그림으로 이해하는 일본 사케 양조 공정
일본 사케(니혼슈, 日本酒)는 쌀과 쌀누룩, 물로 빚습니다. 공정은 "정미(精米)에서 병입까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중간중간 여러 갈래로 나뉘고 그 갈림길이 맛의 차이를 만듭니다. 먼저 전체 흐름을 표로 정리한 뒤, 각 공정에서 "무엇을 하는지"와 "왜 필요한지"를 한 줄씩 짚어보겠습니다. 다 읽고 나면 뒷라벨에 적힌 용어나, 나마자케(生酒, 비살균 사케)와 히이레자케(火入れ酒, 살균 사케)의 차이가 공정의 어느 지점에서 갈라지는지 감이 잡힐 것입니다.
일본 사케 양조에는 "이치코지, 니모토, 산즈쿠리(一麹, 二酛, 三造り)"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룩(麹, 코지)이 첫째, 슈보(酒母, 모토라고도 하며 효모를 키운 밑술)가 둘째, 모로미(醪, 발효 중인 술덧) 담금이 셋째로 중요하다는 순서입니다. 이 순서를 머릿속에 넣어두면 이어지는 공정을 정리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전체 흐름
먼저 큰 그림부터 잡아보겠습니다. 원료 쌀이 사케가 되기까지는 대략 다음 순서로 진행됩니다. 발효 중에 쌀·누룩·물이 섞인 내용물을 모로미(醪)라고 부릅니다. 담금부터 병입까지는 약 60일, 모로미 발효만 따지면 약 20일이 표준적인 기준입니다(장기 숙성주는 예외입니다).
| 순서 | 공정 | 무엇을 하는가 | 왜 필요한가 |
|---|---|---|---|
| 1 | 정미(精米) | 현미의 겉면을 깎는다 | 잡맛의 원인이 되는 성분을 제거한다 |
| 2 | 세미·침지(洗米·浸漬) | 쌀을 씻어 물을 흡수시킨다 | 찜의 결과를 균일하게 한다 |
| 3 | 증미(蒸米) | 쌀을 찐다 | 누룩균과 효모가 쓸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 |
| 4 | 제국(製麹, 누룩 만들기) | 찐 쌀에 누룩균을 번식시킨다 |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힘을 마련한다 |
| 5 | 슈보(酒母) 만들기 | 효모를 대량으로 배양한다 | 발효의 근원이 될 효모를 확보한다 |
| 6 | 삼단 담금(三段仕込み) | 쌀·누룩·물을 3회에 나눠 넣는다 | 효모를 지키면서 양을 늘린다 |
| 7 | 모로미 발효 | 탱크 안에서 발효시킨다 |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진행한다 |
| 8 | 조소(上槽, 압착) | 모로미를 짜서 나눈다 | 액체인 술과 술지게미(사케카스)로 분리한다 |
| 9 | 여과 | 탁도와 잡맛을 조정한다 | 외관과 맛을 다듬는다 |
| 10 | 히이레(火入れ) | 가열하여 살균한다 | 품질을 안정시킨다 |
| 11 | 저장·숙성 | 일정 기간 재운다 | 맛의 각을 없애고 둥글게 만든다 |
| 12 | 병입 | 병에 담아 출하한다 | 상품으로 마무리한다 |
이제부터는 이 12개 공정을 "발효 전 준비 → 발효 담금 → 압착과 마무리 → 저장과 출하" 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발효를 시작하기 전(1~3번 공정)
처음 세 공정(정미, 세미·침지, 증미)은 발효를 시작하기 전의 밑준비입니다. 쌀을 깎고, 씻고, 물을 흡수시켜, 찌는 과정이지요. 네 번째인 누룩 만들기는 다음 절에서 다룹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여기서 사케의 뼈대가 결정됩니다.
- 정미. 현미의 겉면을 깎아냅니다. 겉면에는 단백질과 지질이 많아, 이것이 많이 남으면 잡맛이 나기 쉽습니다. 얼마나 깎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정미보합(精米歩合)입니다. 이 숫자를 읽는 법과 맛에 미치는 영향은 준마이·긴조·다이긴조의 차이에서 다룹니다.
- 세미·침지. 쌀을 씻고 물에 담가 흡수시킵니다. 흡수 시간(초 단위)에 따라 찜 결과가 달라지므로, 정미보합이 높은(많이 깎은) 쌀일수록 시간 관리가 세밀해집니다.
- 증미. 쌀을 찝니다. 밥을 짓듯 삶지 않고 찌는 이유는,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외경내연(外硬内軟)"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상태가 누룩균이 자라는 방식을 좌우합니다.
다 찐 쌀은 누룩용, 슈보용, 모로미용으로 나뉘어 쓰입니다. 같은 찐 쌀이 세 가지 역할을 모두 해내는 셈입니다.
누룩 만들기(4번 공정)
누룩 만들기는 이후 발효를 성립시키는 핵심 공정입니다. "일곡(一麹)"이라 불릴 만큼 가장 중시됩니다.
찐 쌀에 누룩균(황국균, 黄麹菌)을 뿌려 번식시킨 것이 쌀누룩(米麹)입니다. 누룩균은 쌀의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냅니다. 이를 당화라고 합니다. 효모는 당을 알코올로 바꿀 수 있지만 전분은 직접 이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분을 당으로 바꿔주는 누룩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누룩 만들기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누룩실(麹室, 코지무로)에서 이틀 정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이라 양조장(구라, 蔵)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누룩균을 쌀알 속까지 어떻게 파고들게 하느냐(하제, 破精의 형성 방식)에 따라 당화되는 정도가 달라지고, 이는 맛의 진하고 옅음에도 영향을 줍니다. 이 부분은 정미·제국·삼단 담금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슈보(酒母) 만들기(5번 공정)
슈보는 발효의 주역인 효모를 대량으로 키우는 공정입니다. "모토(酛)"라고도 불리며, "이모토(二酛)"에 해당합니다.
찐 쌀, 물, 누룩에 효모를 더해 효모를 집중적으로 늘립니다. 동시에 유산(젖산)의 힘으로 잡균을 억제해, 효모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 이 유산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양조법이 갈립니다.
- 속양(速醸). 양조용 유산을 처음부터 넣는 방법입니다. 관리가 쉽고 기간도 짧은 편입니다.
- 기모토(生酛)·야마하이(山廃). 미생물의 작용으로 유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전통 방식입니다. 속양이 약 2주 걸리는 데 비해 기모토 계열은 약 한 달이 걸려, 손도 시간도 더 듭니다.
기모토와 야마하이는 맛의 경향도 달라집니다. 그 차이는 중급자를 위한 강의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삼단 담금(6번 공정)
슈보가 완성되면 드디어 본 담금입니다. 여기서 쓰이는 방식이 삼단 담금입니다. 쌀·누룩·물을 한꺼번에 넣지 않고 3회에 나누어 더해갑니다.
왜 나눠서 넣을까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쌀과 물을 넣으면, 애써 키운 효모와 유산이 옅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잡균이 파고들 틈이 생깁니다. 조금씩 더하면 효모는 농도를 유지한 채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온도 관리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전체 흐름은 4일간 이어집니다.
| 일차 | 명칭 | 하는 일 |
|---|---|---|
| 1일차 | 하쓰조에(初添) | 슈보에 쌀·누룩·물을 더한다 |
| 2일차 | 오도리(踊り) | 아무것도 넣지 않고 효모를 늘리는 날 |
| 3일차 | 나카조에(仲添) | 하쓰조에의 약 2배량을 더한다 |
| 4일차 | 도메조에(留添) | 다시 2배량을 더해 담금을 마친다 |
2일차에 일부러 쉬어 가는 "오도리"가 핵심입니다. 이 시기에 효모 수를 충분히 확보한 뒤, 단숨에 양을 늘려갑니다. 단계를 밟아감으로써 효모가 우세한 상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모로미를 키울 수 있습니다.
모로미 발효(7번 공정·병행복발효)
삼단 담금을 마친 모로미 안에서는 일본 사케만의 독특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병행복발효(並行複発酵)입니다. 일본 사케를 이해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원리입니다.
병행복발효란 당화와 알코올 발효가 같은 탱크 안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룩의 효소가 전분을 당으로 바꾸고, 그 당을 효모가 곧바로 알코올로 바꿉니다. 이 두 과정이 나란히 일어납니다.
와인은 원료인 포도에 이미 당분이 있어 효모가 발효만 하면 됩니다(단발효). 맥주는 맥아로 당화한 뒤 별도로 발효시킵니다(단행복발효). 일본 사케는 당화와 발효를 하나의 탱크 안에서 동시에 처리합니다. 이런 방식은 다른 주류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동시에 진행되면 당이 지나치게 쌓이지 않아 효모가 계속 알코올을 만들어내기 좋습니다. 모로미는 약 20일에 걸쳐 발효되며 서서히 알코올 도수를 높여갑니다.
압착·여과·히이레(8~10번 공정)
발효를 마친 모로미는 아직 술과 고형분이 섞인 상태입니다. 여기서부터 마실 수 있는 술로 마무리합니다.
조소(上槽)는 모로미를 짜서 액체와 술지게미(사케카스, 酒粕)로 나누는 공정입니다. 짜는 방식에는 자동 압착기(야부타, 薮田), 후네(槽), 자루 매달기(袋吊り) 등이 있으며 방식에 따라서도 풍미가 달라집니다. 우선 짜내는 시점에 따라 맛이 다른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 아라바시리(あらばしり).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첫 부분입니다. 향이 화려하고 거친 신선함이 있습니다.
- 나카도리(中取り, 중간 짜낸 술). 그다음 나오는 중간 부분입니다. 향과 맛의 균형이 좋아 상급으로 여겨집니다.
- 세메(責め). 마지막에 강하게 짜낸 부분입니다. 맛이 진하고 도수도 약간 높은 편입니다.
짜는 시점과 방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압착(조소) 기법에서 다룹니다.
여과에서는 미세한 탁함, 색, 잡맛을 조정합니다. 어디까지 다듬을지는 양조장이 노리는 맛에 따라 달라집니다.
히이레는 술을 약 60~65도에서 짧은 시간 가열해 살균하는 공정입니다. 남아 있는 효소의 작용을 멈추고, 술을 상하게 하는 미생물인 히오치균(火落ち菌)을 억제합니다. 이로써 품질이 안정됩니다. 히이레는 보통 저장 전과 병입 전, 두 차례 이루어집니다.
이 히이레를 몇 번, 언제 하느냐에 따라 술의 명칭이 달라집니다.
| 명칭 | 저장 전 히이레 | 출하 전 히이레 |
|---|---|---|
| 일반적인 히이레자케 | 함 | 함 |
| 나마초조슈(生貯蔵酒) | 안 함 | 함 |
| 나마즈메슈(生詰酒) | 함 | 안 함 |
| 나마자케(生酒) | 안 함 | 안 함 |
히이레를 하지 않는 나마자케는 신선한 맛이 매력이지만, 품질이 쉽게 변하므로 냉장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 "나마(生)"를 구분하는 방법은 라벨 읽는 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장·숙성·병입(11~12번 공정)
갓 짜낸 술은 맛에 각이 서 있습니다. 자극이 강하고 거친 인상입니다. 그래서 일정 기간 재웁니다.
일본 사케 대부분은 겨울에 담가지고, 신주(新酒)는 여름 한 철을 넘기며 저장됩니다. 이 기간 동안 맛이 어우러지며 부드러워집니다. 여름을 나며 맛이 좋아지는 것을 "아키아가리(秋あがり)"라고 부릅니다(계절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사케의 계절 용어에서 다룹니다). 저장은 대개 냉장 등으로 온도가 관리되는 환경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가수(割り水)로 알코올 도수를 조정한 뒤 병에 담아 출하합니다. 여기까지의 갈림길들, 즉 정미보합, 슈보의 종류, 히이레 여부가 술 한 병 한 병의 개성을 만들어냅니다.
정리
일본 사케 양조의 흐름을 요점만 다시 짚어보겠습니다.
- 순서는 "이치코지, 니모토, 산즈쿠리". 누룩, 슈보, 모로미 담금 순으로 쌓아 올린다.
- 누룩이 전분을 당으로 바꾸고(당화), 효모가 당을 알코올로 바꾼다(발효).
- 당화와 발효가 같은 탱크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병행복발효. 일본 사케의 핵심이다.
- 삼단 담금은 효모를 지키면서 양을 늘리기 위한 분할 투입이다.
- 히이레 횟수와 시점이 나마자케·나마초조슈·나마즈메슈의 차이를 만든다.
전체 공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면, 다음은 용어와 맛의 관계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기초부터 짚고 싶다면 처음 만나는 일본 사케 입문을, 분류의 차이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준마이·긴조·다이긴조의 차이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법정 음주 가능 연령(일본 기준 20세) 이상의 독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음주는 적당량을 지키시고,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경우, 그리고 운전 전에는 음주를 삼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