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케 입문
사케를 고르려고 하면 라벨과 매대 안내판에서 낯선 말이 연이어 눈에 들어옵니다. '세이슈(清酒)', '준마이(純米)', '나마(生)', '겐슈(原酒)'. 겉모습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뜻은 저마다 다릅니다. 전부 외우려 들면 마시기도 전에 지쳐 버립니다.
처음에 필요한 것은 암기가 아닙니다. 각각의 말이 '어느 층위의 이야기인지'를 가려내는 지도입니다. 이 글은 사케를 처음 골라 보는 분에게 그 지도를 건넵니다. 용어를 모두 외울 필요는 없고, 궁금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충분합니다. 하나하나의 자세한 차이는 각 주제별 글에 연결해 두었습니다.
사케란 무엇인가
토대가 되는 말은 '세이슈(清酒, 맑은술)'입니다. 이는 일본 주세법에서 정한 주류 구분을 가리킵니다. 한국의 청주와 같은 한자를 쓰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일본 법률상의 분류를 뜻합니다. 쌀·쌀누룩(쌀에 누룩곰팡이를 번식시킨 것, 코지)·물을 기본 원료로 발효시킨 뒤, 술덧(모로미)을 걸러 냅니다(짜서 액체와 술지게미로 나누는 것). 이렇게 빚어 알코올 도수 22도 미만 등의 요건을 충족한 술이 세이슈입니다. 양조 알코올 등 일본의 시행령(政令)으로 정해진 물품을 더하는 세이슈도 있습니다(도쿄국세국 『일본주(청주)에 관한 것』).
세이슈 양조의 특징은 병행복발효(並行複発酵)라는 방식입니다. 쌀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작용과, 그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작용. 보통은 차례대로 진행되는 이 두 가지가 같은 탱크 안에서 동시에 일어납니다. 당화와 발효가 나란히 진행되는 만큼 높은 알코올 도수에 이르기 쉽고, 향과 맛의 폭도 넓어집니다. 맥주나 와인과는 다른 세이슈만의 방식인데, 그 구체적인 원리는 양조 공정 이야기에서 다룹니다.
정리하면 법률상의 정식 명칭은 '세이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듣는 '니혼슈(日本酒, 일본주)'는 어떤 위치에 있는 말일까요.
'세이슈'와 '니혼슈'는 무엇이 다른가
같은 매대에 나란히 놓인 '세이슈'와 '니혼슈'. 사실 이 두 말은 가리키는 대상이 다릅니다. '니혼슈'는 세이슈 가운데 조건을 충족한 술에만 쓸 수 있는, 보호받는 이름입니다.
일본 국세청은 '니혼슈'를 주류의 지리적 표시(GI)로 지정했습니다. GI란 산지와 결부된 품질을 지키기 위한 명칭 제도입니다. '니혼슈'를 내걸 수 있는 것은 일본산 쌀을 쓰고 일본 국내에서 양조한 세이슈뿐입니다(일본주조조합중앙회 『일본주의 지리적 표시(GI)』/일본 국세청 『주류의 지리적 표시』). 외국산 쌀을 쓴 술이나 해외에서 빚은 세이슈는 품질이 아무리 높아도 '니혼슈'라고 표시할 수 없습니다.
| 이름 | 무엇을 가리키는가 | 산지 조건 |
|---|---|---|
| 세이슈(清酒) | 일본 주세법상의 구분. 쌀·쌀누룩·물을 기본 원료로 하는 양조주(종류에 따라 양조 알코올 등을 더함) | 제한 없음 |
| 니혼슈(日本酒, GI) | 세이슈 가운데 일본산 쌀을 쓰고 일본 국내에서 양조한 것 | 일본산 쌀·일본 국내 양조로 한정 |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바로잡겠습니다. '세이슈'는 해외에서도 만들 수 있으므로, 매대에 놓인 세이슈가 모두 일본산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니혼슈'라는 표시만이 일본산 쌀과 일본 국내 양조를 보증합니다. 헷갈리기 쉬운 이 경계선은 오해 바로잡기 FAQ에서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다룹니다.
세이슈를 가려 읽는 두 개의 잣대
세이슈 라벨에 늘어선 말들은 크게 두 개의 잣대로 나뉩니다. 이 둘을 나누어 보는 것이 지도를 읽는 첫 번째 요령입니다.
- 등급의 잣대 … 원료와 정미보합(精米歩合, 쌀을 얼마나 깎아 냈는지 나타내는 비율)으로 정해지는 이름입니다.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후쓰슈(普通酒, 보통주)**인지, 준마이슈(純米酒)·긴조슈(吟醸酒)·혼조조슈(本醸造酒) 같은 특정명칭주(8종류. 일본 국세청 『청주의 제법품질표시기준』에 따른 것)인지로 나뉩니다. 자세한 내용은 준마이·긴조·다이긴조의 차이에서 다룹니다.
- 양조·마무리의 잣대 … 히이레(火入れ, 가열 살균)·물 첨가·탁함의 유무 등 만드는 방식에 따라 붙는 이름입니다. 나마자케(生酒)·겐슈(原酒)·니고리자케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음 장에서 한눈에 보는 표로 정리합니다.
이 두 잣대는 따로따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준마이슈이면서 나마자케'처럼 등급의 이름과 양조 방식의 말이 동시에 붙습니다. 둘을 떼어 읽을 수 있으면 아무리 긴 이름도 두렵지 않습니다.
매대에서 자주 보는 말 한눈에 보기
매대에서 자주 마주치는 말을 히이레(가열 살균 처리)와 물 첨가를 축으로 한 줄씩 짚어 봅니다. 겐슈·나마자케·나마초조슈·나마즈메슈는 일본 국세청 『청주의 제법품질표시기준』에서 정한 표시입니다. 니고리자케만은 이 기준의 정의어가 아니라, 앙금을 남긴 술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이름입니다.
| 말 | 한 줄 설명 |
|---|---|
| 나마자케(生酒) | 빚은 뒤 한 번도 가열 처리를 하지 않은 세이슈. 신선한 풍미 |
| 나마초조슈(生貯蔵酒) | 가열하지 않은 채 저장하고, 출하 전에 한 번만 가열 처리한 세이슈 |
| 나마즈메슈(生詰酒) | 저장 전에 한 번 가열하고, 병입 때는 가열하지 않는 세이슈 |
| 겐슈(原酒) | 물을 더하지 않고 빚은 그대로의 알코올 도수로 마무리한 세이슈 |
| 니고리자케 | 앙금을 남겨 뽀얗게 탁한 세이슈. 막걸리를 떠올리게 하는 외관 |
나마자케·나마초조슈·나마즈메슈의 차이는 히이레(가열 처리)를 어느 단계에서 하느냐에 따라 갈립니다. 일반적인 세이슈는 저장 전과 병입 전, 두 번 히이레를 합니다. 이 두 번 가운데 어느 쪽을 생략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정리가 됩니다. 표시의 세세한 조건은 라벨 읽는 법에서 하나씩 확인합니다.
다음 글은 이 순서로
말의 지도가 손에 들어왔다면 이제 외길입니다. 다음 순서로 읽으면 지식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 준마이·긴조·다이긴조의 차이 … 특정명칭주 8종류를 낱낱이 뜯어봅니다
- 라벨 읽는 법 … 매대의 정보를 스스로 읽어 냅니다
- 맛과 향/온도와 보관 … 맛있게 마시는 조건을 익힙니다
- 구매 가이드 … 한 병을 골라 손에 넣습니다
분류 → 라벨 → 맛 → 온도·보관 → 구매. 이 순서로 한 계단씩 오르면 다음 한 병을 '어쩐지 느낌으로' 고르는 일은 없어집니다.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지름길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한 병을 고르고 싶다면 구매 가이드, 선물을 찾는다면 선물 고르기, 여행지에서 마실 한 병이라면 양조장 견학 준비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길을 잃으면 이 글로 돌아오면 됩니다. 지도는 언제든 다시 펼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법정 음주 연령(일본은 만 20세) 이상의 독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음주는 적정량을 지키고, 임신 중·수유 중인 분과 운전 전의 음주는 삼가시기 바랍니다.